자유게시판
젊은날의 추억
작성자 : 윤용혁
작성일 : 2005.06.01 21:01
조회수 : 1,259
본문
올해도 약총 후배들의 청을 마다 못하고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운학 1리라는 마을로
하계봉사를 떠나게 됬다.
대학시절 내내 여름 방학이면
첩첩 산중 이곳에와 봉사를 한 것이다.
원주에서 갈아탄 차는 산 모퉁이를 돌아
툴툴 거리며 흙 먼지를 내뿜으며
나아간다. 시골 장터에서 거나하게
막걸리를 드신 할아버지 한분이
바지춤을 잡고 쩔쩔매신다.
운전기사는 짜증 한번 안내고 차를 멈춘다 .
할아버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풀숲에 대고 일을 보신다 .
차는 구비구비 돌아 힘겨운듯 연신 쿨럭 거린다 .
기온이 갑자기 서늘해지는 것으로 보아
거의 목적지에 다 다른것 같다 .
여기서 다시 서너 시간을 걸어
목적지인 아담한 분교에 도착하였다 .
몇몇 분의 낯이 익다 .
짐을 풀고 진료 봉사준비에 들어 간다 .
후배들은 시골 화장실 소독과 장마통에
파여진 길 보수와 고랭지 배추밭 김매기 .
담배잎따기 등의 근로 봉사를 한다 .
여학생들은 여름 학교를 열고
졸업반 4학년들은 나를 도와 투약 봉사에 들어 간다 .
산골 마을이라 주로 신경통 ,피부질환,
위장병 환자들이 많다 .
아프시면서도 생전 약 한번 드시지 못한 할머니도 계신다 .
약 봉투를 드리면 손을 덥석 잡고
고마워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신다 .
올해도 오기를 잘했다.
남들은 여름휴가다 피서다 날리지만은…
변변치 않다며 감자와 옥수수를 내미신다 .
어떤 아저씨는 고맙다며
집 앞에서 딴 고야 (자두와 비슷한 맛)를
한 바구니 내신다.
막상 봉사를 한다지만 배우는 점이 더 많다 .
특히 소외되고 외로웠던 그들의 끈끈한 정 말이다 .
그후 봉사가 절정을 이를쯤 문제가 발생하였다 .
산골 동네에 봉사랍시고 여대생들이 많이 오니까 .
산골의 장가 못간 총각들간에 갈등이 있었나 보다 .
휴가 나온 동네 군인 하나를
깨진 소주병으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
늦은 시간 후배들과 투약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
우당탕 하며 피투성이가된 군인 하나를
고목처럼 눕혀 놓고 뛰쳐나간다 .
상처를 보니 왼 빰의 살점이 덜렁이고
가슴부위에 심한 상처로 출혈이 심하다 .
마침 위생병 출신 동기가 있어
흰천을 찢어 가까스로 지혈을 시켰다 .
나의 까운은 피범벅이 된지 오래다 .
근처에 훈련 나온 이동식 야전병원이 있어
군의관에게 연락을 취하여 후송을 시켰다 .
시계를 보니 새벽3시다 . 빈데에 피를 뜯기면서
두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아침 투약봉사에 들어 가는데
이번에는 왠 시골 처녀가 헐레 벌떡 뛰어온다 .
어머니가 이상하시다고 ...
급히 혈압기를 가지고 뛰어 가보니
다 쓰러진듯한 오두막집에
여자 한 분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
옆에 할머니가 계시기에 여쭈어 본즉,
약사님이 지어주신 약이 잘들어
빨리 나으려고 두세봉씩 한꺼번에 먹었다고 한다 .
아뿔싸~ 복약지도를 충분히 했건만 ….
먹다 남은 약 봉투를 돌려 받으려 하니
할머니가 그 아까운 약을 하시며
안 주시려고 한다 .
아! 이번 봉사는 참 어렵게 진행되는 것 같다 .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혹시 개업도 못해보고 약사면허가
취소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주민들은 낮에 일을 나가시고 저녁에
칠팔십명이 몰려 오신다 등짝에 땀이흐른다.
봉사기간 중 유난히 멋을 내는 젊은 아주머니가 계셨다
(입술에 루주를 두껍게 바르시는 것 만 빼면)
그 중 돋보인다 . 주민 위안의 밤 부녀회에서 국수를 준비 하였는데 .
그 아줌마의 애가 국수를 먹고 싶어 자꾸 보챈다 .
그랬더니 아줌마가 고무신을 벗어 그애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아마 젊은 대학생들 앞에서 창피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고무신이 그렇게 무서운 도구로 변할 줄이야…
갑자기 나의 어린 시절 생각이 떠오른다.
동네 잔치 집에서 국수 두 세 그릇 먹고 떼 숨길락 하던
그 시절, 코감기로 약 한번 먹지 못하고 누런 코를
연신 들락 거리던 코방구리,
부스럼을 달고 살던 00 친구 생각이 나
코 끝이 찡해 진다 .
그 아줌마 멋만 부리지 말고 아이에게 국수 좀 주지 …
유난이 신나게 관광버스춤을 추시는 또다른 아줌마가 보인다.
그며칠전 헐떡거리던 아줌마다.
건강하게 돌아오신 것이다. 힘껏 박수를 쳤다..
검게 그을은 순박한 그들을 보면서
“봉사를 잘 왔구나” 하는 생각으로 힘이 다시 솟는다 .
그렇게 하여 나의 봉사는 몇 년간 계속되었다 .
그때 후송된 군인은 지금은 괜찮은지 …
시간이 난다면 나의 제 2의 고향 같은
강원도를 향해 달려 가고 싶다 .
젊은 여름날 함께했던 그곳을 잊지 못해 …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운학 1리라는 마을로
하계봉사를 떠나게 됬다.
대학시절 내내 여름 방학이면
첩첩 산중 이곳에와 봉사를 한 것이다.
원주에서 갈아탄 차는 산 모퉁이를 돌아
툴툴 거리며 흙 먼지를 내뿜으며
나아간다. 시골 장터에서 거나하게
막걸리를 드신 할아버지 한분이
바지춤을 잡고 쩔쩔매신다.
운전기사는 짜증 한번 안내고 차를 멈춘다 .
할아버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풀숲에 대고 일을 보신다 .
차는 구비구비 돌아 힘겨운듯 연신 쿨럭 거린다 .
기온이 갑자기 서늘해지는 것으로 보아
거의 목적지에 다 다른것 같다 .
여기서 다시 서너 시간을 걸어
목적지인 아담한 분교에 도착하였다 .
몇몇 분의 낯이 익다 .
짐을 풀고 진료 봉사준비에 들어 간다 .
후배들은 시골 화장실 소독과 장마통에
파여진 길 보수와 고랭지 배추밭 김매기 .
담배잎따기 등의 근로 봉사를 한다 .
여학생들은 여름 학교를 열고
졸업반 4학년들은 나를 도와 투약 봉사에 들어 간다 .
산골 마을이라 주로 신경통 ,피부질환,
위장병 환자들이 많다 .
아프시면서도 생전 약 한번 드시지 못한 할머니도 계신다 .
약 봉투를 드리면 손을 덥석 잡고
고마워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신다 .
올해도 오기를 잘했다.
남들은 여름휴가다 피서다 날리지만은…
변변치 않다며 감자와 옥수수를 내미신다 .
어떤 아저씨는 고맙다며
집 앞에서 딴 고야 (자두와 비슷한 맛)를
한 바구니 내신다.
막상 봉사를 한다지만 배우는 점이 더 많다 .
특히 소외되고 외로웠던 그들의 끈끈한 정 말이다 .
그후 봉사가 절정을 이를쯤 문제가 발생하였다 .
산골 동네에 봉사랍시고 여대생들이 많이 오니까 .
산골의 장가 못간 총각들간에 갈등이 있었나 보다 .
휴가 나온 동네 군인 하나를
깨진 소주병으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
늦은 시간 후배들과 투약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
우당탕 하며 피투성이가된 군인 하나를
고목처럼 눕혀 놓고 뛰쳐나간다 .
상처를 보니 왼 빰의 살점이 덜렁이고
가슴부위에 심한 상처로 출혈이 심하다 .
마침 위생병 출신 동기가 있어
흰천을 찢어 가까스로 지혈을 시켰다 .
나의 까운은 피범벅이 된지 오래다 .
근처에 훈련 나온 이동식 야전병원이 있어
군의관에게 연락을 취하여 후송을 시켰다 .
시계를 보니 새벽3시다 . 빈데에 피를 뜯기면서
두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아침 투약봉사에 들어 가는데
이번에는 왠 시골 처녀가 헐레 벌떡 뛰어온다 .
어머니가 이상하시다고 ...
급히 혈압기를 가지고 뛰어 가보니
다 쓰러진듯한 오두막집에
여자 한 분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
옆에 할머니가 계시기에 여쭈어 본즉,
약사님이 지어주신 약이 잘들어
빨리 나으려고 두세봉씩 한꺼번에 먹었다고 한다 .
아뿔싸~ 복약지도를 충분히 했건만 ….
먹다 남은 약 봉투를 돌려 받으려 하니
할머니가 그 아까운 약을 하시며
안 주시려고 한다 .
아! 이번 봉사는 참 어렵게 진행되는 것 같다 .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혹시 개업도 못해보고 약사면허가
취소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주민들은 낮에 일을 나가시고 저녁에
칠팔십명이 몰려 오신다 등짝에 땀이흐른다.
봉사기간 중 유난히 멋을 내는 젊은 아주머니가 계셨다
(입술에 루주를 두껍게 바르시는 것 만 빼면)
그 중 돋보인다 . 주민 위안의 밤 부녀회에서 국수를 준비 하였는데 .
그 아줌마의 애가 국수를 먹고 싶어 자꾸 보챈다 .
그랬더니 아줌마가 고무신을 벗어 그애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아마 젊은 대학생들 앞에서 창피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고무신이 그렇게 무서운 도구로 변할 줄이야…
갑자기 나의 어린 시절 생각이 떠오른다.
동네 잔치 집에서 국수 두 세 그릇 먹고 떼 숨길락 하던
그 시절, 코감기로 약 한번 먹지 못하고 누런 코를
연신 들락 거리던 코방구리,
부스럼을 달고 살던 00 친구 생각이 나
코 끝이 찡해 진다 .
그 아줌마 멋만 부리지 말고 아이에게 국수 좀 주지 …
유난이 신나게 관광버스춤을 추시는 또다른 아줌마가 보인다.
그며칠전 헐떡거리던 아줌마다.
건강하게 돌아오신 것이다. 힘껏 박수를 쳤다..
검게 그을은 순박한 그들을 보면서
“봉사를 잘 왔구나” 하는 생각으로 힘이 다시 솟는다 .
그렇게 하여 나의 봉사는 몇 년간 계속되었다 .
그때 후송된 군인은 지금은 괜찮은지 …
시간이 난다면 나의 제 2의 고향 같은
강원도를 향해 달려 가고 싶다 .
젊은 여름날 함께했던 그곳을 잊지 못해 …
댓글목록 0
성기남님의 댓글
계속 이어지는 좋은 글 고맙습니다...
태동철님의 댓글
삶의 현장에서 일러나는 삶의 몸짓을
한편의 서정시에 담았습니다
좋은글 잘보고 ...빨리나으려고 두세봉지...어제의 현실을 오늘 우리는 얼마나 알고있을까?
이성현님의 댓글
태선배님,筆友가 늘어갑니다.무지개 인고홈의 앞날이 밝아보입니다.
최송배님의 댓글
둘토회(인고동문테니스회) 게시판에서도 용혁 후배의 글을 읽고 정말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글재주가 보통이 아니군요. 자주자주 올려주세요. 흔들리는 머리속 좀 정리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