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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를 섬이라 불러서야/조우성(시인)(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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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 인천일보(05. 6. 2)
육지를 섬이라 불러서야
/ 조우성(시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중략)//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지난해 작고하신 원로 시인 김춘수 선생의 대표작 ‘꽃‘의 일부이다. 언뜻 보기에는 무슨 연애시 같아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애송하는 시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사실은 매우 까다로운 철학적, 관념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시이다.
인천 출신의 문학 비평가 김흥규 교수(고려대)는 이 시에 대해 “세상에는 많은 사물들이 있다. 그러나 그 사물들이 원래부터 어떤 이름과 의미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이름이란 누군가가 사물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그것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하고자 해서 ‘붙이는’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물과 사람 사이에는 관계가 생기고, 그 관계가 곧 그들 사이의 ‘의미’가 된다.”며 명명행위(命名行爲)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김 교수는 특히 “이 시에서 시적 화자(詩的 話者)가 말하는 ‘이름’이란 김 아무개, 이 아무개 하는‘관습적(상투적-필자 註) 이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의 참된 모습과 가치를 이해하면서 서로에게 부여해 주는 ‘진정한 이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식의 저편 캄캄한 동굴 속에 갇혀 있던 ‘존재’에게 ‘진정한 이름’을 부여해 줌으로써 그 존재가 ‘의미 있는 존재’로 부활한다는 것이다.
‘제2연륙교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삶을 살면서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며 사느냐를 나타내는 상징적 지표이기도 한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만인이 사용하는 다리의 이름이고 보면 최소한 그에는 지역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 역사관, 미래관이 상징화(象徵化)되어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제2연륙교’의 이름 짓기 과정을 보면 그런 수준의 ‘명명’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다. 인천에 있는 큰 다리이니 ‘인천대교’라고 불러야 한다는 발상은 상식적이요, 구태의연한 ‘관습적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전국에 있는 연륙 ? 연도교의 대부분이 그 지역명(地域名)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과 바를 바 없는 것으로 이는 상상력의 부족이요, 편협한 지역주의의 발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면 관계상 여기서 왜 ‘황해대교’이어야 하는가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하지만, 현재 건설 중인 신도시이름(송도국제도시)은 재론치 않을 수 없다.
‘송도’는 분명 일제의 식민지적 잔재로 일제가 우리 고유의 이름인 원우이면(먼우금)을 일본식 명칭인 ‘송도정(松島町)’이라 했던 것으로 광복 후 일부 민간에서 별 자각 없이 그대로 사용해 온 것에 불과한 것이다. 광복 직후 인천시지명위원회가 ‘송도정’을 퇴출시킨 것이나, 그 후 오늘날까지 인천시 행정동에 ‘송도동(松島洞)’이라는 동명이 없던 것은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송도국제도시’, ‘송도국제대교’ 운운하는 것은 일제가 인천 땅에 깊숙이 박아놓은 ‘언어의 쇠말뚝’을 뽑아낼 생각은 않고, 오히려 이를 지켜야 한다고 나선 꼴이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무슨 역사 청산을 운운할 수 있는가? 더더구나 갯벌을 매립해 만든 ‘육지(뭍)’를 ‘섬(島)’이라고 부르려 하고, 갯벌 한복판이었던 땅에 ‘소나무(松)’라는 이미지를 이식하려 하는지 그 의중을 헤아리기도 쉽지가 않다. 대체 인천 어디에 ‘송도(松島)’라는 섬이 있었단 말인가? 일제가 제 맘대로 붙여준 ‘송도’가 인천의 면면한 역사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 얼토당토않은 일본식 섬 이름을 축복받아야 할 인천의 새 도시의 이름으로 정하려는 것은 그래서 일종의 ‘역사에 대한 모반’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자매도시인 일본의 키타규슈(北九州) 시가 십 수년 전부터 ‘환황해시대(還黃海時代)의 도래’를 내다보고 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환황해(環黃海) 6개 도시 시장 회의’를 주도해 오고 있는 판에 황해를 코앞에 둔 인천에서는 이 같은 시대적 추세를 외면한 채 ‘식민지 잔재’에 불과한 ‘송도(松島)’에 연연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부디 100년 앞을 내다보고 신도시나 연륙교의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시간과 지혜를 모아 주기 바란다.
종이신문정보 : 20050602일자 1판 4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5-06-01 오후 6: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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