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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동(松島洞)’, 당장 철회해야(조우성. 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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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5. 6.21)
‘송도동(松島洞)’, 당장 철회해야
/조우성 시인
인천시가 현재 건설 중인 신도시의 소속 동명(洞名)을 행정자치부의 승인을 받아 ‘송도동(松島洞)’이라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말인즉 “새 국제도시에는 새로운 동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구의회(區議會)와 지역 여론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연수구 구의회나 ‘지역 여론’이 역사적, 지리적 배경이나 알고서 ‘송도동’으로 명명하자고 했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만일 구의회나 ‘지역 여론’으로 일컬어지는 몇몇 인사들이 인천의 지명 유래에 대해 대강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결코 그런 우(愚)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대한 오류는 인천에는 어느 곳에도 ‘송도’란 섬이 없었으며, 그것은 일제가 옛 인천부 ‘원우이면’에 제멋대로 박아놓은 ‘언어의 쇠말뚝’이었다는 점이다. 좀 지루한 사설(辭說)이 되겠으나 차제에 ‘송도동’의 전말을 분명히 밝혀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구한말, 인천감리서가 설치되기 전 인천부에는 10개 면이 있었다, 지금의 연수구는 대부분 먼우금면에 속했는데 옹암리(甕岩里), 먹암리(墨菴里), 망해리(望海里), 동막리(東幕里), 척전리(尺前里), 한진리(漢津里), 함박리(咸朴里), 대아도리(大阿島里), 소아도리(小阿島里), 야동(冶洞), 옥동(玉洞)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가운데 동막이나 척전, 함박 등은 지금도 민간에 땅이름으로 살아 있고, 행정적으로는 청학동, 옥련동, 동춘동, 연수동이라 일컬어진다.
먼우금은 먼어금, 먼오금이라고도 했다. 한자로는 원우금(遠又今) 또는 원우이(遠又爾)라고 적었는데 여러 기원설이 있다. 바닷가에 큰 갯골이 있어 ‘배로 다니면 가깝지만 걸어서 다니면 멀다’는 뜻이라거나 그 옛날에의 ‘먼우금’은 ‘가도 가도 먼’ 벽지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다. 1906년 일본인들은 먼우금면을 행정조직 개편작업에 따라 서면(西面)으로 바꿨는데 이곳이 인천부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인 것이다.
1914년 인천부는 지리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전국적으로 지방행정구역을 조정하는 가운데 개항장인 각국공원 (현 자유공원) 일대만이 인천부(仁川府)로 남고 그 나머지 지역은 새로 만든 부천군(富川郡)에 편입됐던 것이다. 이때 연수구는 부천군 문학면에 속했는데 옥련리(玉蓮里), 도장리(道章里), 연수리(延壽里), 청학리(靑鶴里), 동춘리(東春里)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그 후 이 지역에 느닷없이 등장한 ‘송도정(松島町)’은 일본식 정명(町名 한국의 洞名에 해당하는 행정 구역)이었다. 1936년 10월 인천부의 행정구역을 확장하면서 문학면의 일부였던 옥련리를 인천부에 편입시키고 이름을 송도정(松島町)이라 바꾼 것이다. ‘송도’는 일본인들이 즐겨 쓰는 섬(島)이름으로, 오늘날 일본 전역에는 약 1천 개의 ‘송도’란 섬이 현존하고 있다,
이 무렵에 일본인들은 옥련동 해변에 송도유원지를 만들었다. 그들은 1937년 경기 내륙 지방의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수인선(水仁線)을 개통했는데 정거장 이름 역시 ‘송도역’이라 했다. ‘송도정’에서 비롯된 송도유원지, 송도역이란 이름이 턱도 없이 생겨난 것이데 이로 인해 ‘송도’는 민간(民間)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것이 무슨 우리 고유 지명(固有地名)인 양 별 자각 없이 지금까지 옥련동 일대를 ‘송도’라 불러왔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일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인천시지명위원회가 왜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치자는 뜻에서 공식적으로 ‘송도정’을 ‘옥련동’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천시가 이런 전말조차 모른 채 여론, 구의회, 행자부 등을 등에 업고 일제 망령을 되살려내고 있으니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재론 하지만, ‘송도동’은 사리에 크게 어긋나는 ‘명명(命名)’인 것이다. 21세기 인천시의 명운(命運)이 걸린 최첨단 정보화, 국제화 도시를 건설하면서 그 이름이 없어 기껏 일제 망령(日帝妄靈)을 끌어낸단 말인가? ‘육지’를 ‘섬(島)’이라 일컫자는 것도 망발(妄發)이요, 해면 매립지와 소나무(松)이미지가 어떻게 어울리는 것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최첨단 국제 도시’와 ‘소나무 섬마을(松島洞)’, 아무래도 궁합이 맞지 않는다.
결론삼아 말하면, ‘송도동’은 인천 땅을 영원히 식민지로 만들려는 일본인들의 제국주의적 욕망과 소나무가 지천으로 흔했던 ‘내지(內地 일본인들이 본국을 가리켰던 말)’에의 향수가 배어 있는 왜식 정명(町名)인 것이다.
‘여론을 수렴했다’는 행정적 안전판 이외에 그 역사적, 언어적 배경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정한 ‘송도동(松島洞)’은 당장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면면한 인천의 지역사와 광복 직후 왜식 정명을 과감히 말소시킨 선대(先代) 어르신들과 오늘을 사는 인천 시민 모두를 욕되게 하는 처사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종이신문정보 : 20050621일자 1판 5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5-06-20 오후 7:16:14
댓글목록 0
전재수님의 댓글
구의 명칭을 짓기전에 말이 한동안 오고갔을텐테...
왜 그동안 가만이 있다가....이런글을 미리 게제했으면 ..
많이 알고있는 분은 그 지식을 충분히 발휘 할 줄알아야합니다.
일이 벌어진후 뒷전에서 나중에 이러쿵 저러쿵 역겨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