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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상(55회) 영진공사 회장 별세 … 향년 80세(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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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6.12.20)
이기상 영진공사 회장 별세 … 향년 80세
이기상(사진) ㈜영진공사 명예회장이 19일 오전 11시 20분 지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80.
고 이 명예회장은 1936년 9월 29일 인천시 중구 도원동3가 2에서 태어나 창영초, 동산중, 인천고, 연세대 상학과를 졸업했다.
초등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야구선수로 활약했으며 인천고 주전투수로서 1950년대 전국대회 제패를 이끌었다.
1961년 항만하역과 화물물류 보관 전문업체인 지금의 영진공사를 설립해 상무이사·대표이사 사장·회장 등을 역임했다. <관련기사 2면>
경기매일신문과 인천일보 이사를 역임하는 등 지역언론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91년 인천시의회 의원에 선출돼 초대 의장을 맡아 지방자치 발전에 이바지했다.
유족은 부인 공경화(80) 씨와 아들 강우(영진공사 부사장) 씨, 딸 강아·지현 씨. 고인의 형이자 12~14대 인천상의 회장을 지낸 고 이기성(1985~1993년) 회장의 아들인 이강신 현 인천상의 회장은 조카다.
빈소는 가천대길병원 장례식장 501호, 발인은 21일(수) 오전 8시30분, 장지는 성남시 분당 메모리얼파크. 032-460-3444, 890-1200
/이은경 기자 lotto@incheonilbo.com
2016년 12월 20일 00:05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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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큰 별' 이기상 지다
정치·경제 등 다방면 활동...시의회 '초대 의장' 맡기도
소외층 지원·봉사 앞장서...투병 중에도 열정 눈부셔
▲ 고 이기상(왼쪽 다섯 번째) 회장이 1992년 10월 월미도 문화의거리에서 인천시 주최로 열린 '인천 국제관광전'에 당시 인천시의회 의장 자격으로 참석해 개막 테이프를 끊고 있다.
▲ 고 이기상(가운데) 회장이 2003년 9월 금강산 이산가족상봉초대소에서 진행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 자격으로 참석해 상봉가족에게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사진제공=유족
고 이기상(1936년 9월29일~2016년 12월19일) ㈜영진공사 명예회장은 인천의 거목이었다. 고인의 삶은 인천역사와 궤를 함께했다. 어느 누구보다 인천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생을 살았다.
창영초, 동산중, 인천고, 연세대 상학과를 졸업한 그는 인천을 위한 일이라면 거침이 없었다. 영역 불문, 인천이 필요한 자리엔 항상 '이기상', 그가 있었다.
고인은 정치, 경제, 사회, 체육 등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인천을 몸으로 이야기했다. 인천항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인천항을 터전으로 ㈜영진공사를 설립해 항만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고민하며 한국항만협회 이사와 인천항만물류협회장을 지냈다.
오늘날의 인천신항 개발, 배후단지 조성, 신항 항로 증심 등을 일궈낸 인천항발전협의회 설립을 주도해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인천의 목소리를 냈다. 2004년 인천항 제2연륙교 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아, 당시 정부의 인천항 홀대정책에 정면으로 맞서기도 했다.
선박의 안전한 통항을 위해선 인천대교 주경간 폭 확대가 절실하다는 주장을 편 끝에 결국 인천대교 주경간 폭은 설계 당시 700m에서 800m로 확장될 수 있었다.
30여년 만에 부활한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1991년 치러진 광역의회 의원선거에 당선돼 인천시의회 초대 의장도 맡았다. 인천을 위한 '인천 정치인'이라고 판단되면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인은 인천의 아픔도 늘 함께했다. 1999년 한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인현동 호프집 화재참사가 발생하자 인현동화재사고수습 범시민대책위원장을 자청해 수습을 진두지휘했다.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제 8~9대 회장,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이사로도 활약하는 등 그늘지고 소외된 곳에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인천고 야구부 투수 출신으로 인천고의 1950년대 초중반 잇단 전국대회 제패를 이끌었던 주역이었다. 스포츠로 하나되는 인천을 꿈꿨던 그는 인천야구협회장, 인천시체육회 부회장, 인천 연고 프로축구단 창단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2007~2020년 인천체육발전기금 100억원 조성운동도 이끌었다. 2007년 인천 연고 SK 와이번스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순간 "드디어 구도(球都) 인천의 부흥이 시작됐다"며 울먹였던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그러나 최근 10년 넘도록 파킨슨병과 투병하면서 점차 시민들과의 접촉 기회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지역 후배들을 찾아 아낌없는 조언을 쏟아내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병중에도 만나는 사람 한명 한명의 이름을 호명하던 고인의 표정과 음성을 많은 이들이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전한다.
때론 소주잔을 채워주며 격려해주고, 때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잘못을 꾸짖던 그를 사람들은 벌써 그리워하고 있다.
이귀복 인천항발전협의회장은 "고인은 정작 자신이 일군 기업인 영진공사는 항상 뒷전이었다"며 "요즘 같은 난세일수록 늘 인천과 인천항의 발전만을 고민하셨던 고인을 우리는 본받아야 한다"고 추모했다.
안상수(새·인천 중동강화옹진) 국회의원은 "인천시장 재임 당시 (고인과)함께 많은 대화를 나누며 큰 도움을 받았다. 인천이 낳은 훌륭한 인물 중 한 분인데 너무 안타깝다. 고인은 인천의 중대사마다 앞장 섰던 큰 별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은경 기자 lotto@incheonilbo.com
2016년 12월 20일 00:05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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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한술님의 댓글
인천지역발전과 모교후원.총동창회.야구후원회,동문장학회를 위해서도 많은후원을 해주신 이기상 대 선배님의 명복을 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