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도종환 시인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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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7일.
봄비 같지 않은 굵은 비가 내리는 저녁
도종환 시인이 오셨다.
구월동 교보문고에서 싸인회를 마치고
"작가회의" 문인들과 그리고 독자들을 만나기위해
청주에서 빗속을 달려오셨다.
그동안 한번 만나서 인사한적은 있지만
고맙게도 울가게를 예약하시고
같이 만나 얘기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셨다.
비탓에 길이 막혀에정시간을 훨씬 넘겼는데도
그이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3여년만에 낸 시집 "해인으로 가는길"의
설명회라고 할까?
긴시간 같이 얘기는 하지 못했지만
뜻있는 시간이었다.
그분께 감사를 드리며 그분의 대표작
"접시꽃 당신"을 적어본다.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육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 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 1986년 간행한 도종환의 두번째 시집 《접시꽃 당신》의 표제시이다. 결혼 2년여만에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시집이란 것이 알려지면서 초유의 판매기록을 세우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절실하게 표현하여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기도 하였다고 한다.
댓글목록 0
이동열님의 댓글
문화에 관심 많으신 동문들은 꼬리글 달틴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