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74회 또 하나의 위업 달성을 위한 행보
작성자 : 이인규
작성일 : 2006.07.13 18:39
조회수 : 1,105
본문
퍼온글 : 74회 홈페이지(www.inko74.pe.kr)
연연방 변호사 문상익 동문 귀국 환영회 스케치
친구들 간의 모임에 있어서 어찌 풍류가 없을 수 있으랴.
인생
홍학의 다리 같은
외나무다리 위를
시절은 흘러 흘러
몇 구비 돌았던고
오늘도
슬픈 그림자
어딜 향해 가느냐
갈수록 후미진 길
낄낄낄 웃는 바람
아무리 빗질해도
끝 간 데를 알 수 없네
눈물은
켜켜이 쌓여
빗물 되어 흐르고
돌아서 가려 해도
왔던 길 아득하고
어디로 가야 한다
말하는 이도 없네
풀 끝에
앉은 새처럼
흔들리는 발걸음
이 시조는 몇 년 전에 발표한 나의 작품이다. 예견된 지금의 우리네 인생살이의 모습을 표현해 본 것으로 이제까지 살아온 과정과 안개가 낀 듯 희망을 가질 수 없는 혼란스러운 세태의 흐름을 그려보고 싶었다. 이 작품에 대해 오지랖이 넓게 해설을 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는데 어느 정도 어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문상익 동문. 참으로 30여 년 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고등학교 시절 그가 반장일 때 나는 학습부장으로서 인연을 맺었다. 방과 후 개구리 우는 소리를 벗삼아 창가에 앉아서 서로의 속내를 발가벗기듯 털어놓던 추억이 어제의 일인 듯 눈에 밟힌다. 언제나 남의 잘못을 감싸주려고 자청해서 매를 맞던 의리로 똘똘 뭉쳐있던 친구였다. 그가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온갖 역경을 딛고 50줄에 들어서서 뉴질랜드 영연방 변호사가 된 것에 진심으로 축하해 마지 않는다. 만학이지만 앞으로 그의 힘찬 활약을 기대해 본다.
문상익 동문의 귀국 환영식을 인고 74회 재경 동창회 주관으로 가졌다. 2006년 7월 4일 - 인고 74회와 연관을 짓는다면 참으로 뜻깊은 날이라 아니할 수 없을지니 - 강남역 '신흥관' 부근에 있는 '노랑저고리'라는 음식점에서 19시부터 이철완 재경 인고 74회 동창회장을 비롯하여 맨마지막 주자 백영진 동문의 참석으로 총 18명이 모인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한 분위 속에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더군다나 인천에서 이상용 인고 74회 총동창회장님과 이인규 서무총무, 부봉하 재무총무님이 불원천리 참석하여 자리가 더욱 빛나 감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전 재경 인고 74회 동창회장이었던 김경윤 동문의 사회로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순박하고 성실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차명호 동문을 비롯하여 입사한 지 30여 년 만에 KT&G 인천본부장이 된 강주원 동문, 토목업계의 거장 홍동수 동문(서해안고속도로 및 서울-안산간 고속도로 등등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곳이 11개소가 된단다. 자신은 문상익 동문에게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부 맛을 알아 열심을 내었다는 것이니 문상익 동문을 스승으로 둔 셈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힘주어 말하니 만장의 박수갈채를 받을 만하다.), 그리고 산행의 달인 이명용 동문의 봉이 김선달이 뽕녀를 울린 얘기는 배꼽을 쥐게 하였다.
문상익 동문은 군복을 벗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으며, '~사'가 붙는 직업을 물색하던 중 이발사나 요리사는 본시 손재주가 없어 엄두를 낼 수 없었고, 아무래도 변호사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기를 쓰고 공부한 덕에 50줄일망정 자랑스러운 영연방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고 보면 그의 의지와 투지가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고 고백했다. 가령 부부싸움 후에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뼛속깊이 파고드는 외로움에 친구들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이민 생활의 애환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1차 모임은 이상용 인고 74회 동창회장님의 문상익 동문에 대한 '축하패' 전달과 이철완 회장의 '문상익 동문의 머리털을 위하여'란 건배 제의로 끝났다. 아닌 게 아니라 대머리가 된 문상익 동문의 모습. 마치 어느 분야의 원로처럼 보였다. 머리에 대해서는 정의섭 동문이 책임을 지겠다고 하니 계속 두고볼 일이다.
1차 모임이 파하고 재경에서 2차로 단골인 호프에 갔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동행했다. 대단한 결속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는 앞서 밝힌 대로 '인생'이란 시조에 대한 강의(?)에 열변을 토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체험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기수첩에 실린 '저마다 가는 길이 달라도'의 ' ....... (중략) 네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고/ 내가 못나면 얼마나 못났느뇨/사노라면 어찌 기쁘고 즐거운 일만 가득 차고 넘치겠는가/때때로 슬픔과 아픔도 뒤따르나니/설령 사는 게 괴롭고 힘들지라도/결코 혼자서 외로이 가지 마라/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내가 있기에 네가 있는 기쁨을/한시도 잊지 말고 알뜰히 나누세......'를 가지고 사자후를 토했다. 그것이 친구로서 끈끈한 우정을 지속하는 길이라 여겼기에.
시간은 물 흐르듯 하여 밤 11시가 되었다. 이철완 회장이 나더러 건배 제의를 하라 하기에 '내일 또 내일'로 건배 제의를 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메세지를 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상용 인고 74회 동창회장님의 건배 제의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와 교가 제창으로 모임이 파했다.
저마다 가는 길이 달라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굳건히 서있는 친구들이여. 앞서 얘기한 대로 설령 사는 게 괴롭고 힘들지라도 결코 혼자서 외로이 가지 마라. 문상익 동문의 말마따나 외로움처럼 무서운 것이 없나니 나중에 늙어 정자 밑에서 내기 바둑이나 장기를 둘 친구쯤은 능히 갖고 있는 게 짧은 인생이지만 재미롭게 세월을 낚는 비결이 아닐까.
문상익 동문의 귀국 환영식.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는 것과 친구 없는 외로움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체득할 수 있는 귀중한 만남의 시간이었다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세월의 여러 구비를 돌면서 늠름하게 자신의 목표를 일구어낸 그에게 거듭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인생은 바로 그것이다. 다들 열심히 살자. 그리고 낯선 것에 친숙해지지 않으면 자신을 한 뼘 이상 키울 수 없다는 것을 - 나의 지론이지만 - 명심할지니 '절벽이 보이면 희망도 있다'는 나의 좌우명을 양념으로 곁들인다.
동문들의 건승과 함께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며.......
* 참석자 명단(가나다 순)
강주원, 권중훈, 김경윤, 김수만, 문상익, 박성완(박희준), 백영진, 부봉하, 이명용, 이상용,
이승구, 이인규, 이철완, 정의섭, 조문형, 진우곤, 차명호, 홍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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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님의 댓글
이 글은 74회 수필가 진우곤이 쓴 글입니다. 인천에서도 7월8일(토) 오후7시 석바위 그린일식집 문상익동문 환영식이 있었습니다.
李聖鉉님의 댓글
74회에 인재가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