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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동참한 고교생 비밀결사단 재조명 절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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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경인일보(19. 4.25)
[독립운동과 인천·(10)인천고 제39회 졸업생들]
독립운동 동참한 고교생 비밀결사단 재조명 절실
인천지역에서 독립운동으로 가장 유명한 학교는 인천의 3·1 운동 발상지로 알려진 인천창영초등학교(옛 인천공립보통학교)다.
하지만 당시 인천고등학교(옛 인천공립상업학교) 학생들도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인천고 39회 졸업생은 재학 중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었고, 졸업 후에도 활동을 계속했다.
비밀결사조직에는 39회 조선인 졸업생 47명 중 절반이 넘는 24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이들의 행적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 중 4~5명이 먼저 '오륜조(五倫組)'라는 이름의 친목단체를 만들었다.
이 소규모 모임이 일본인 야마모토 마사나리 교장이 그동안 묵인해오던 조선인 학생들만의 졸업앨범 제작을 반대한 것을 계기로 비밀결사조직으로 발전했다. 야마모토 교장은 졸업 앨범 비용을 국방헌금으로 내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동구 송림동의 한 사진관에 졸업 앨범 인쇄를 맡겼다고 한다. 당시 중구 인현동에는 훗날 대중일보 창간에 참여했던 이종윤이 운영하는 '선영사'가 있었다.
도심 지역에 조선인 출판사가 있었는데 굳이 송림동의 사진관을 이용한 것이 수수께끼처럼 궁금하다.
이들이 졸업을 앞두고 있던 1940년은 '전시동원체제'가 본격화한 시점이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 수행을 위해 국가 총동원법(1938년)을 제정해 자원 수탈을 강행했다.
졸업 후에도 학병 거부 운동을 벌이던 이들은 1943년 일본 경찰에 결의문이 적발되면서 모두 구속됐다. 경찰의 모진 고문에 정태윤, 가재연, 고윤희, 김여수 등은 대전형무소에서 숨을 거뒀다.
하지만 국가보훈처 공훈록도 체포 인원과 순국 인원을 혼동할 정도로 이 사건이 제대로 조명돼 있지 않다. 이들의 행적을 연구하고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나오는 이유다.
'마지막 무관생도들', '김원봉 평전' 등의 책을 쓴 인천고 출신 이원규 작가는 "동기생 중 절반 이상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인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발행일 2019-04-25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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