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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덕재(97회) 인천시상인회장(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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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서울뉴스통신(21. 3. 3)
[인터뷰] 이덕재 인천시상인회장
시장내 열악한 점포주도 지원·배려대상에 포함시켜 주었으면…
【 경기·남부 = 서울뉴스통신 】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 / 글=김동초 대기자 = 인천은 300만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는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광역시다. 서울과 부산에 이은 초거대 인구 밀집도시다.
조만간 부산을 초월해 전국 제2의 도시가 될 전망이다. 그렇게 큰 전국 3대 도시의 인천에는 전통시장이 무려 50여 군데나 있다고 한다. 그중 37개의 시장이 상인연합회에 등록해 서로의 발전과 상생을 위해 인천상인연합회를 중심으로 결속을 다지고 있다.
역시 인천상인연합회는 경기도상인연합회에 이은 거대 상인연합회다. 이런 거대한 상인연합회에 젊은 상인회장이 연임을 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이덕재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18년 최연소로 제5대 인천상인연합회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윗사람을 공경하며 성실과 정직을 바탕으로 한 젊은 패기를 몰아 제6대 인천시상인연합회회장으로 연임에 성공한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인천 시청 뒤 쪽에 위치한 인천상인연합회에서 마주한 이덕재 인천상인연합회회장의 첫 인상은 훤칠한 키와 탄탄한 체격이 마치 정상급의 스포츠맨을 연상케 했다. 183센티의 신장에 100kg의 체중을 자랑하는 근육질의 몸매에서 강인한 인상을 한껏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 속에서 묻어나오던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표현은 사람을 끌어 다니는 묘한 매력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의 이덕재 상인연합회회장은 상인회장 계통에서는 입지전적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33세 때인 2011년 용현시장 최연소 상인회장에 선출됐고 40세가 되던 2018년에는 인천상인연합회 회장직에 올랐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전통시장 상인회장들은 적어도 그 시장출신으로 50대 후반이나 60~70대의 나이 지긋한 인물들을 연상하게 된다. 310만 초거대도시의 최초·최연소 젊디젊은 상인연합회 회장이라는 타이틀이 그래서 더욱 새롭게 부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제6대 인천상인연합회회장 연임에 성공한 이덕재 회장은 이번 선거를 치루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솔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될 줄 알았던 회장선거에서 가까운 이들로부터 아픔을 겪기도 했다며 세상을 다른 차원에서 한 번 더 성찰하며 새삼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1시간 인터뷰 내내 상인들, 특히 소외되기 쉽고 열악한 처지의 시장상인들을 향한 진심이 듬뿍 담긴 주장들은 그의 진솔한 인간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렇게 젊음의 패기와 합리를 정확하게 겸비한 이덕재 사단법인 인천상인연합회 회장과의 인터뷰는 젊은 상인들과의 토크쇼를 진행하는 느낌으로 오랜만에 전통시장 앞날에 관해 진취적인 신선함과 열정을 마음껏 토로한 자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상인들, 이 사회 지탱하는 기초 대들보
애민정신 기초로 한 상인행정 절실히 요구돼
문. 전국 세 번째 거대 도시인 인천상인연합회 회장에 연임하신 소감은?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처음 인천상인연합회 회장에 출마할 때보다 훨씬 더 정열적으로 뛰었다고 생각됩니다.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거의 탈진 할 지경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 있을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한 선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기억에 남고 어렵게 이 자리에 다시 서게 된 만큼 인천상인들의 권익과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다시 선택해주신 인천상인여러분들께 진심으로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문. 회장님의 성장기와 시장과의 인연을 말씀해 주신다면?
저는 1979년 인천 간석동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어머님은 인천 인하대 후문에서 식당업을 하셨고 아버님은 어릴 적 중동지방 등 외국에서 대기업의 건설근로자로 해외 근무를 했었다고 합니다.
인천에서 용일초등학교와 인하부중을 거쳐 100년 역사의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교 졸업 후 2000년 10월 군에 입대, 의정부 306보충대를 거쳐 비무장지대 수색대대에서 근무를 하며 비로소 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일찍 군에 지원했었다면 직업군인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만큼 군 생활이 적성에 맞았고 또 성실하게 복무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2002년 만기 제대 후 인하대 후문에서 25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시던 어머님가게에서 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스럽게 우리가게에 채소를 납품하시던 용현시장상인의 권유로 용현시장에서 7개월 정도 두부제조·판매 일을 배우다 전망이 좋을 것 같아 청년창업대출을 받아 지금의 두부가게 운영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판매를 한다는 게 조금은 창피스러워 서툴렀고 매출도 부진했습니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었지만 나름 고전을 하던 때였습니다.
문. 일찍 가정을 꾸리셨다고 하시는데?
제 아내와 20대 중반에 결혼을 했으니 포기가 많은 ‘4포세대(직장포기, 주택포기, 결혼포기, 자식포기)인 같은 세대에선 조금 이른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사귀던 집사람과 드디어 10년 만인 2006년 10월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살림은 용현동 지하도 옆 작은 집에서 시작했습니다.
말썽쟁이고 철없던 그 당시에 아버님은 저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으시며 저를 나무라기보다는 제가 기가 죽지 않도록 많은 것을 무리해서라도 웬만하면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그러한 아버님께서 작년에 ‘소천(召天)’하셔서 아버님을 생각 할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문. 용현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해 상인회장직까지의 과정은?
아내가 판매를 하고 제가 두부를 생산하니 매출도 늘고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시장을 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다보니 애정이 생기고 시장에 무언가 기여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체력과 의지로 상인회에 들어가 열심히 뛰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오래됐던 관계로 위아래로 나뉘어져 파벌이 심했습니다.
위쪽 시장 상인대부분은 연세가 드신 분들이었고 나중에 형성된 아래 시장은 젊은 상인들이 많았습니다. 시장발전을 위해서는 위·아래 시장의 통합이 절실했었습니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던 상태에서 제가 지원을 했습니다.
저는 지역의용소방대 활동도 하며 나름 사람들과 교류가 활발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점포도 위쪽 시장에 있었기에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대신해 아래시장과 교감을 할 수 있는 적임자였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떤 일을 시작하면 책임감과 리더십이 강한 타입 입니다. 솔선수범하며 윗분들을 존중하고 또 선배형님들을 잘 따랐던 관계로 무리 없이 임원진을 구성, 시장 상인회에서 앞장서 일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열성적인 활동 끝에 결국 2006년 용현시장에서 두부가게를 시작해 5년 만인 2011년 최연소 용현시장 상인회장에 선출되게 되었습니다.
문. 용현상인회장에서 인천상인연합회 회장재임까지의 과정은?
용현시장상인연합회장직과 인천상인연합회 회장직은 급과 차원이 다른 자리입니다. 5대 연합회장 선거 때 전임연합회장님께서 임기가 끝나 선거를 치루게 됐는데 저의 상대 후보께서 경력과 인맥, 그리고 조직력까지 워낙 뛰어난 분이라 도저히 저와는 비교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신으로라도 진정한 인천상인연합회의 발전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는 생각으로 인천 35개 회원사시장을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시장상인회장님들께 강한 상인연합회를 만들자고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인천 전체의 시장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강한 상인연합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강한 연합회만이 정부나 지자체를 상대로 시장과 상인의 권익과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상인회장님들이 저의 젊은 패기와 용기 진정성을 높이 사 2018년 2월, 저에게 인천시상인연합회 회장직의 기회를 주시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시장상인들을 위해 정말 열심히 뛰었고 인천상인연합회장 재임에 도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선거에 임한 결과 2021년 2월 현재 제5대에 이어 제6대 인천상인연합회 회장직에 재임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힘든 선거였고 나름 아픔 속에서 인생의 또 다른 한 면을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선거를 교훈삼아 좀 더 성숙해지고 좀 더 현명하게 인천상인연합회를 위해 봉사할 것을 다짐합니다.
문. 市나 官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정부나 인천시에 진심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시장현장을 잘 파악하셔서 실질적인 지원에 힘써달라는 점입니다. 여러 가지 부탁사항이 있지만 그 중 제일 먼저 시장 내 열악한 점포를 운영하는 회원들도 모두 시장식구들입니다.
그들도 지원이나 배려대상에서 제외하지 마시고 현실적인 현장행정을 펼쳐주시길 기대합니다.그리고 상인들이 살아야 사회가 안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과 상인들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초 대들보입니다. 애민정신을 기초로 한 상인행정을 부탁드립니다.
문. 회장님만의 가정사와 좌우명이 있으시다면?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제 집사람과 10년 후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너무 고맙고 너무 소중한 존재입니다. 친구며 동지이고 동지이며 연인입니다. 제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아내와의 사이에 1녀(11세), 1남(9세)를 두고 있습니다. 아내가 착하고 밝고 건강하게 성장시켰고 너무 사랑스런 아이들입니다. 이젠 아이들이 제 모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굳이 제 좌우명이라면 “솔직하고 성실하게 살자”입니다. 재능보다는 인성이 우선입니다. 늘 남을 배려하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희망 있는 내일이 반드시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사태 속에 모두 힘든 시기지만 인천상인연합회 회원 여러분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연합회장직을 수행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인천상인연합회 회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명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 / 글=김동초 대기자
2021.03.0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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