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함세덕(32회) 두번째 이야기 '무의도기행'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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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경인일보(14. 4.23)
[책 읽는 인천, 문학속 인천을 찾다·15]함세덕 두번째 이야기 '무의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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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어선들에 점령당한 바다
식민지 어민의 적나라한 현실
▲ 일러스트/박성현기자
당시 '떼무리'로 불리던 소무의도 배경
日 '중선'에 밀려난 궁핍한 삶 묘사
완성도 높고 근대 어민문학 한 획 그어
친일과 월북 행적으로 아쉬움 남겨
면적 1.22㎢의 작은 섬 소무의도는 일제강점기에 어선 40여 척이나 있던 어촌이었다. 사람들은 이 섬을 '떼무리'로 불렀다. 지금은 2.5t급 소형 어선 4~5척에 주민등록 인구 73명의 한적한 섬이다.
일제 때 떼무리에서 나온 건새우는 일본 시모노세키, 시즈오카 등지에 대량 수출되기도 했다. 인천 연안 섬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렸다.
인천이 낳은 극작가 함세덕(咸世德·1915~50)은 1941년 떼무리를 배경으로 한 '무의도 기행'을 발표했다. 조선총독부의 전시동원체제가 우리 국민 개개인의 삶을 옥죄던 때, 함세덕은 떼무리 어민들의 신산한 삶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등장인물의 대사 속에서 당시 일제의 식민지 어업 수탈 행태를 엿볼 수 있다. 극적 완성도도 우수하다. 함세덕 연구자 윤진현 박사는 "단순히 인천 앞바다의 무의도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장소적 의의를 넘어 식민지 조선의 어업 현실로부터 발원하는 한국 근대 어민문학의 한 중심을 차지하는 중대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국내 함세덕 박사 1호인 인하대 김만수 교수(문화콘텐츠학부)도 "살아있는 구어체로, 말이 길거나 장황하지 않고, 입에 감기는 대사를 쓰는 생생한 어촌 인물을 창조했다"고 설명했다.
'무의도 기행'은 작품 제목처럼 기행문 형식이다. 극중 주인공(천명·天命)이 보통학교를 다닐 때의 담임 선생이 떼무리에 찾아갔다가 제자의 죽음을 알고 그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담임 선생을 함세덕으로 생각하고 읽을 수 있다. 그는 실제 떼무리를 찾아가 어민들을 곁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 소무의도는 대부분 산으로 돼 있어 논밭을 일굴 땅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과거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사진은 어선에 사용된 목재로 외벽을 덧입힌 폐가. /김명래기자
# 배를 타야 하는, 천명(天命)
'무의도 기행'은 '도민(島民)들이 가장 기피하는 황량한 겨울이 접어들려는 시월 상순'에 '서해안에 면한 무의도(떼무리라고 부른다)라는 조그만 섬'에서 시작된다. '이번에 수원가는 철로가 생겼다'는 말로 미뤄보면 수인선 개통 시기인 1937년으로 추정된다.
섬사람들은 1년 중 겨울에 막 접어드는 10월 이 무렵을 싫어했다. '성해가 끼믄 민어낚시 하든 것두 못 해먹게' 되고 '한겨울 굶구 들어 앉었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배경은 소무의도(떼무리)다.
지금도 영종·용유 사람들은 이곳을 떼무리라고 부른다. 떼무리와 큰떼무리(무의도) 사이를 나룻배가 오갔는데, 2년 전 두 섬을 잇는 연도교가 완공됐다.
등장인물로 주인공 천명(天命)과 그의 부모인 낙경, 공씨, 천명의 외삼촌으로 선주인 공주학 등이 나온다.
낙경은 강원도에서 집과 땅을 팔고 떼무리에 건너와 정착한 인물이다. 떼무리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렸다.
지난 18일 소무의도에서 만난 강기인(80)씨는 "해방 무렵에 120~130호가 작은 마을에 빽빽하게 들어섰다"고 말했다.
낙경이 떼무리에 오면서 '연평 가서 조기만 잡으문, 돈 벌긴 물 묻은 손에 모래 줍기'라고 생각했다. 한때 새우장군, 조기장군으로 '떼무리 정낙경'이 인천 앞바다뿐 아니라 서해에서 명성을 날렸다. '앰평에 천명 아버지가 쓱 내리문 계집이란 계집은 다 몰려왔고' '(낙경은) 주머니에서 돈을 푹푹 집어줬을' 정도였다.
낙경과 같이 배를 타던 동사들 모두 잘 풀렸다. 정첨지는 싸전을 내고 돈놀이를 하고, 황서방은 강화에 비단전을 냈다. 칠성할아버지는 먼우금(연수구)에 땅을 샀는데 수인선 개발로 평당 6전 주고 산 땅이 25전으로 4배 이상 올라 큰 돈을 벌었다.
천명은 낙경의 셋째 아들이다. 천명의 큰형은 조기를 잡다가, 둘째형은 새우 사리 나갔다가 죽었다. 어머니 공씨는 '비나 억수 같이 퍼붓구 높새에 부엌 문작이 덜그덕거리기나' 하는 날이면 아들 생각에 밤새 운다. 낙경의 처남, 공씨의 남동생인 공주학은 천명을 동어(숭어)잡이에 내보내려 하지만 천명은 거부한다.
아들을 걱정하는 낙경과 공씨를, 내년에 발동선을 사 천명이를 일등 기관사로 키우겠다며 설득한다. 이 대목에서 일제 때 인천 섬 지역 어선의 변화상을 알 수 있다.
극중 낙경이 과거 타던 배는 풍선(風船)이었다. 낙경에게 뱃일을 배운 공씨는 일본에서 제작된 중선(일명 나가사키선)으로 고기를 잡았고, 중선은 1940년대 동력선으로 교체됐다.
공주학 소유 중선이 부자리(배 밑바닥<SPAN style="FONT-FAMILY: 굴림; BACKGROUND: #ffffff; LETTER-SPACING: 0pt; FONT-SIZE: 12pt;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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