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함세덕(32회)과 인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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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경인일보(14. 4.17)
# 함세덕과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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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세덕 |
함세덕은 1915년 5월 23일 인천부 화평동 455에서 태어났다. 아이 때 집에서 부르던 이름은 함성달이었다. 3남3녀 중 차남이었고, 큰형(함금성)은 이복형제였다. 부친 함근욱은 공무원으로 관립 인천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이 학교 부교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조부 함선지는 인천신상회사 부사장까지 지낸 객주(상인)였다. 함세덕이 태어나고 얼마 뒤 부친은 근무지를 목포로 옮겼다.
함세덕이 인천이 아닌 목포에서 출생했다고 보는 연구자도 있지만 함세덕 묘비에는 강화에서 태어난 것으로 돼 있다. 함세덕은 목포공립보통학교(현 목포북초)에 다녔고 열살 때 인천으로 이사해 인천공립보통학교(창영초), 인천도립상업학교(인천고)를 졸업했다.
함세덕은 인천상업학교에 다니던 시절(1929~1934년) 인천부 용동으로 이사했다. 여기에서 연극, 악극을 공연하는 애관극장이 가까웠다. 새 연극이 오르면, 시험기간일지라도 반드시 애관에 갈 정도로 연극에 빠져 지냈다. 인천상업 재학시절 경험은 극작가 함세덕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그 유명한 희곡 '동승'은 당시의 기억을 되살린 작품이다.
함세덕이 인천상업 5학년인 1933년 여름 친구들과 금강산에 캠핑 갔다가 고찰 마하연(摩訶衍)에서 본 사미승(沙彌僧)을 떠올리며 쓴 이야기다. '동승'에 나오는 지명 가좌울은 인천 가좌동에서 비롯됐다.
이밖에도 '산허구리'의 먼우금(연수구 일대), 배다리(동구 금곡동), '고목'의 소부리(우각리·창영동), 수문리(수문통·송현동) 등의 지명은 모두 인천에서 딴 것이다. '에밀레종' 등장인물 미추홀은 인천의 원초적 지명을 빌려 쓴 것이다.
인천상업을 졸업한 1934년 함세덕은 서울 본정통(충무로)에 있는 대형서점 일한서방에 취직해 1년간 일했다. 낮에 일하고 밤에 희곡을 썼다.
한국 연극계의 거두 유치진은 이때 함세덕을 알게 됐지만, 작가로서 가치를 인정하고 '제자'로 둔 건 1940년 '해연'을 발표한 뒤부터다. 함세덕은 1941년 유치진이 창립한 현대극장에 참여했다. 그는 현대극장에서 무대미술가 이원경, 배우 이해랑 등과 함께 일했다.
인천상업시절 좋아했던 해우 강홍식도 현대극장의 단원이었다. 연극인으로서 좋은 기회를 얻었지만 이때부터 함세덕의 친일 행적은 구체화된다.
함세덕은 시를 써 신문에 낸 적도 있다. 1935년 2월 동아일보에 투고한 '내 고향의 황혼'도 인천 이야기다. 당시 스물한살의 함세덕은 학교를 막 졸업하고 서울에서 극작가의 꿈을 키워가는 시기였다.
황혼이외다. / 팔미도 멀리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검은 섬 우에 / 배부른 범포(帆布) 비치며 노을 뿜은 석양이 걸렷습니다. / 항구의 불빛 멀-게 떨어져 부두의 등대가 어렴풋이 조을 때 / 기슭에 나루배가 초저녁 반작이는 샛별 아래 / 고요히 안식의 기도를 올립니다. …(이하 생략)
글 = 김명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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